이슈

정점에 선 남자

J-Sundi 2023. 12. 8. 03:39

이번 2023 롤드컵에서 T1의 4번째 우승을 했다. 그리고 그 4번의 우승을 모두 갖고 있는 한 사람, 페이커.

페이커 선수를 매우 존경한다. 나보다 나이야 한참 어리지만 사람으로서 너무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 그를 알게 된건 고시원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노트북으로 롤방송을 보면서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돼서 롤이라는 게임이 유행이라는 것을 알았고 바빴던 시기라 게임을 직접하지는 못하고 방송을 통해서만 봤다. 게임이야 워낙 많이 하기도 하고 다양하게 접하기도 해서 롤이란 게임은 몰라도 AOS라는 장르는 알고 있었기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방송을 처음 보던 시기에는 아마 매드라이프의 블리츠가 매우 칭송받던 시기였고 이마저도 거품론이 불거지며 대세는 SKT로 기운 상태였다. 그때 SKT의 느낌은 라인전이 압도적이었고 매우 플레이가 단단하단 느낌이었다. 

워낙 플레이가 뛰어났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궁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본 월즈 결승에서 SKT는 우승을 했고 그날 파란색셔츠의 우지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름은 기억 못했는데 나중에 RNG와 월즈에서 다시 만났을 때 우지 얼굴은 기억나더라)

그 후 방송은 틈틈이 챙겨봤고 페이커의 2번째, 3번째 우승을 보며 시시하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팀적으로 T1의 경기는 항상 기대하게 만든다. 

지고 있더라도 왠지 모르게 해줄것 같은 느낌. 정말 기적처럼 입롤플레이를 구현해내는 한타. 마지막까지 희망을 갖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경기들을 자주 만들어 왔다. 

게임 특성상 초반에는 선수들의 실력에 게임의 승패가 좌우됐었는데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팀 커뮤니케이션, 메타, 밴픽, 선수의 컨디션 등 게임스킬외의 요소들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공격적이었던 페이커의 플레이스타일도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팀의 경기력이 떨어지거나 페이커의 폼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다음 시즌이면 각성한듯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다 죽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한 횟수가 줄기 시작했고 팀을 위해 미끼가 되거나 희생하는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페이커는 항상 다른 선수들보다 뭔가 그 이상의 수를 보는 듯했다.

2017년 삼성갤럭시와의 월즈결승 패배 후 오열하는 페이커를 보며 혹자는 3번이나 우승을 했는데 한 번 준결승한 것 갖고 뭐 그렇게까지 오열하냐고, 즙상혁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상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페이커는 방송에서 말도 잘 안하고 채팅도 안하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 페이커가 오열이라니.. 짐작컨데 게임하다보면 나올 수 있는 충동적인 감정을 제어하기 위함이었을거라 생각한다. 

그 이후 OGN에서 'THE CHASER'란 다큐를 보면서 내가 받았던 느낌을 확신할 수 있었다. 

2022년 DRX는 데프트의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시전하며 소년만화를 완성시켰고 데프트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T1은 내년에 우승하면된다는 마음과 함께.

다시는 이런 멋진 스토리가 나올 수 있을까 싶었지만 페이커는 더 큰그림을 그리며 T1의 4번째 우승이자 페이커의 4번째 우승을 달성했고 무려 시즌 11 시리즈를 완성시켰다.

5번의 준우승

젠지와의 패배

그 동안의 모든 논란을 잠재우는 듯하는 페이커 '쉿!'하는 오프닝

스위스 스테이지 티저에서 페이커 의자씬

MSI에서 졌던 BLG를 이겼고 

T1에 연습생이었던 스카웃은 LNG의 미드라이너로 맞붙게 되었으며

2017년 월즈 결승에서 패배를 하게 만들었던 룰러에게 완벽한 반대의 상황 연출

그리고 토너먼트가 진행될 때마다 마친 모든 걸 알고 짜놓은듯한 티저영상의 나래이션

'골든로드 저희가 막겠습니다'

'최고가 되려면 저를 넘어서야 할 겁니다'

'룰러 선수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모든 길은 결국 저를 통합니다'

'오랫동안 수 많은 팀의 상승과 하락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 끝에 서 있던 사람은 항상 저입니다'

'3번째 우승은 저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4번째 우승은 우리 팀을 위한 것입니다.'

LPL에게 지지않는 팀

'Legends Never Die'는 페이커의 주제곡이 되었고 

2017년 삼성갤럭시의 우승과 2022년 DRX의 우승은 엔드게임에서 경우의 수처럼 올해의 T1을 완성시키기 위한 단 하나의 필요조건이었던 것 같은 작년의 소년만화를 훨씬 뛰어넘는 대서사시를 만들었다.

언제나 각성의 각성의 각성을 거듭하며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와준 페이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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